푸르밀, 직원들은 급여 30% 반납하고 회장은 퇴직금 30억 받아가고
비피더스, 가나초코우유, 검은콩우유, 바나나킥우유를 안 마셔본 사람이 있을까. 메이저 회사는 아니어도 나름 많은 사람들로부터 애용받던 유제품들을 파는 푸르밀이 난데없이 10.17일에 사업 종료와 전직원 정리해고를 '이메일'로 통지하는 일이 발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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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군 부대에 1명의 지휘관과 휘하에 수백명의 부대원들이 있었다.
수백명의 부대원들은 변변찮은 대우와 어려운 여건 속에서도 부대를 지키기 위해 혼신의 힘을 다 해왔다. 그런데 갑자기 그 지휘관이 부대 해산을 명하며 알아서 먹고 살아라 라고 하는 황당한 일이 벌어진 것이다. 알고보니 그 지휘관은 부대를 해산하기 전에 자신의 모든 신변 정리와 퇴직금 정산까지 다 해둔 상태였고, 아무 것도 몰랐던 부대원들은 어디로 가야할지 어떻게 해야할지 발만 동동 구르는 상황이 일어난 것이다.
이건 어쩌면 푸르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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푸르밀은 원래 롯데유업이었는데 故 신격호 롯데그룹 명예회장의 동생인 신준호 회장이 롯데유업을 맡으면서 시작되었다. 신준호 회장은 2007년 지분 정리를 하면서 롯데그룹에서 독립하여 나왔으나, 롯데우유 상표를 지속 사용했고 이로 인해 롯데그룹과 상표권 분쟁이 일어나면서 2009년에 '푸르밀' 로 사명을 변경했다.
사명을 바꾼 푸르밀은 눈에 확 띄진 않았어도 꾸준히 성장했다. 소비자들이 선호하는 유제품 개발과 저렴한 가격을 무기로 유통망을 확충하며 탄탄하게 성장했다. 2017년까지는 꾸준히 매출 성장세와 영업이익 흑자를 내는 기업이었다.
- 2017년 매출 2,575억, 영업이익 15억
그러던 푸르밀의 암흑기가 시작된 것은 지난 2018년 부터다. 신준호 회장을 필두로 전문경영인 체제 아래 운영되었던 푸르밀이 2018년부터 신준호 회장의 차남인 신동환 대표가 부임하면서부터 적자로 전환했고, 이후 매년 매출은 감소하고 영업이익 적자는 더욱 심화되는 어려운 길을 보이기 시작했다.
- 2018년 매출 2,301억, 영업이익 -15억
- 2019년 매출 2,046억, 영업이익 -89억
- 2020년 매출 1,878억, 영업이익 -113억
- 2021년 매출 1,800억, 영업이익 -124억
이에, 신동환 대표는 여러 기업들을 대상으로 푸르밀 매각을 추진했으나 그나마 관심을 보였던 LG생활건강이 시설 노후화와 메리트 부족 판단으로 인수를 포기하면서 매각이 무산되자 공중으로 붕 떠버리게 되었다.
꾸준히 팔리는 제품들이 있긴 했지만 새로운 히트 상품도 없었고 개발하려는 회사측 의지도 부족했다. 시설은 점점 노후화되고 경쟁사들은 각종 마케팅 홍보에 열을 내는데 비해 ,푸르밀은 기존에 팔리던 제품 판매에만 집중하는 모습을 보였다. 당연히 신사업도 설비투자도 마케팅도 가격 경쟁력도 모두 경쟁사들에게서 뒤쳐지고 밀리니 회사가 뒷걸음질 칠 수 밖에 없는 상황.
그렇다고 왜 신대표는 갑작스럽게 사업을 종료한 것일까. 매각이 무산되었어도 사업을 유지하고 있었다면 다른 매수자를 찾을 수도 있었을 것이고, 아니면 비상 경영과 같은 심기일전의 노력을 통해서라도 기업을 살릴 수도 있었을텐데 말이다.
업계에서는 이번 푸르밀 사태가 유업계 시장의 모습을 그대로 대변하는 것이라고도 본다. 저출산 심화에 따른 우유업게 시장 축소에 따른 유업계들이 위기에 봉착했고 그 대표적인 사례가 이번 푸르밀이라는 것이다. 하지만, 일부 시각은 오너 일가가 치밀하게 준비한 그림에 의한 것이란 설도 있다.
노조들의 주장에 의하면, 올해초 신준호 회장이 자진 퇴사할 때부터 이러한 징조가 보였다고 한다. 수년째 누적되고 있는 적자로 기업이 허덕하고 있는 상황에서 회장이 퇴직금 30억원 가량을 챙겨 나갔다 하니 기울어지는 배에 선장이 그나마 남아있는 보물을 챙겨 먼저 탈출한 것과 유사하다고 할까. 바로 작년만 하더라도 -124억의 적자를 낸 기업이 회장이 퇴사하면서 1/4에 해당되는 금액을 지출하게 생겼으니, 뭔가 일리가 있는 말이다.
그런데 희안한 것은 사업 종료는 선언했고 회사 문을 닫겠다고는 하는데 법인은 청산하지 않고 유지를 하고 있다. 법인을 청산할 경우, 영업 손실로 인해 그동안 면제 받아온 수백억원대의 법인세 면제 혜택을 다시 반납해야 한다. 이를 피하고자 사업 청산이나 폐업이 아니라 종료라는 방식을 택했으면서 법인은 남겨둔 것은 꼼수라는게 노조들의 주장이다.
이런 결정으로 인해 피해는 고스란히 푸르밀 임직원 뿐만 아니라 거래해 오고 있는 거래처와 낙농 농가들도 연쇄적으로 피해를 입게 생겼다. 푸르밀은 사전에 노조와 아무런 소통없이 갑자기 노조들에게 그것도 '이메일'로 오는 11월 30일까지 사업을 종료하고 모든 임직원들을 정리해고 한다고 일방적으로 통보했다. 회사 문 닫눈 걸로 결정했으니 짐싸서 나가란 소리와 같은 것이다.
회사가 위태하고 사업이 어려워지면 정리할지 말지는 CEO에게 있는 것은 맞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오랫동안 회사를 위해 일해온 임직원들과 거래처, 그리고 회사 제품을 꾸준히 이용해온 소비자들에게 최소한의 도리는 지켜야 하지 않았을까? 소비자까지 생각하지 않았더라도 한 식구처럼 일해온 직원들에게 아무런 사전 교감도 없고 준비할 시간도 없이 그냥 일방적으로, 그것도 '이메일' 로 던지다시피 통보한 것은 너무한 처사가 아닌가.
심지어 회사는 홈플러스, 이마트, CU 등 PB 상품을 공급하고 있던 유통업체들에게도 아무런 사전 통지를 하지 않았다. 또한, 원유를 납품하던 농가들에게도 마찬가지였다. 대형 유통업체들이야 큰 피해가 없다고 치더라도 농가들은 하루아침에 납품처가 사라지게 되었으니 절망적인 상황을 맞이하게 된 것이다.
푸르밀에 원유를 납품하는 낙농가는 대략 50여곳으로 추정되며, 그 중에서 20여곳은 푸르밀에만 독점으로 원유을 납품한다고 한다. (소식 듣고 얼마나 충격이었을까)
김성곤 푸르밀 노조위원장은 '회사 정상화를 위해서 공장별 인원도 축소해 왔고, 일반직 직원들은 반강제적으로 임금 삭감도 당해왔다. 하지만 회사 정상화를 위해 어떤 고통도 감내하며 동참하려 했다" 며 회사를 살리려는 노조들의 의지가 강했음을 피력했다. 내가 일할 수 있는 일터를 지키는 것도 중요하겠지만 무엇보다 가족과 생계가 걸려있는 문제였을테니 말이다.
현재까지 집계된 피해 인원만 하더라도 정리해고 '이메일'을 받은 정직원이 약 350명, 협력업체 직원 50여명, 배송기사 150여명, 전국 500여개 대리점 점주들과 직원 1천여명 등 약 1,500명이 넘는데다, 원유를 납품하는 농가들의 피해까지 계산한다면 그 피해는 더욱 클 듯 하다.
40년이 넘게 회사가 유지되어 오면서 파업 한번 없이 회사를 위해 임금 삭감과 같은 피해를 감수하면서 묵묵히 회사의 존립을 위해 노력한 임직원들은 불과 하루만에 '이메일' 정리해고 통보를 받아 실직자로 전락하게 되었다. 이런 절망적인 분위기에서도 뒤에서 웃고 있는 사람이 있다면 이미 이런 그림을 다 그려놓고 여태 임금 삭감없이 100% 급여를 수령하면서도 회사야 망하던 말던 퇴직금까지 두둑히 챙겨 나간 소수의 그 사람들 뿐 아닐까.
고용노동부에서 절차상 해고가 합당한지 문제가 없는지 조사에 착수했다고 하니 향후 귀추가 주목된다. 부디 선량한 임직원들과 푸르밀과 관련 있는 분들이 부디 피해가 없었으면, 있더라도 최소화 되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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